만화 볼까, 카페 갈까?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한국에는 방이 많다. PC방, 노래방, 빨래방, 찜질방, 보드게임방…. 수많은 놀이 시설과 편의 시설을 한국인은 ‘방’이라고 부른다. (전화방 같은 퇴폐 시설도 있기는 하다. 불특정 여성들과 전화를 연결해 부끄러운 대화를 나누는 시설이다.) 그 대부분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접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들락거리던 방이 하나 있다. 만화방,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시간이 남아돌던 어린아이와 백수들의 천국. 만화책 수천 권에 둘러싸여 과자를 먹으며 노닥거리던 게으른 자들의 낙원. 지금은 많은 이에게 잊힌 추억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만화방은 사라진 것인가. 이제는 출판 만화보다 웹툰이 인기 있고, 만화책을 보더라도 인터넷으로 보니까? 그렇지 않다. 만화방은 만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신간을 점검하고, 앞에 앉은 동행과 감상을 교환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첫차 시간을 기다리며 라면으로 숙취를 달래던 다목적 공간이기도 했다. 만화방은 사라지지 않았다. 만화 ‘카페’가 되었을 뿐.

2014년 홍대 앞에 만화 카페라고 부를 만한 곳이 처음으로 생겼다. 당시 백수였던 나는 역시 백수인 친구의 손을 잡고 그곳에 놀러 갔다. 담배 연기에 찌든 비닐 소파가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거기 가면 카페처럼 예쁜 소파와 쿠션 위에 널브러져서 카페에 온 것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위의 음료를 마시며 쾌적하게 만화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직접 가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곳에서 김치볶음밥과 떡볶이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나는 행복했다. 만화책은 무려 3만여 권. PC로 만화책을 검색하는, 당시로서는 첨단 시스템까지 있었다! 거절하긴 했지만, 거기 사장은 창업 1년이 되지 않아 프랜차이즈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만화 카페는 빠르게 확장돼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도 나는 가끔 만화 카페에 간다. 집 근처 쇼핑몰에 있는 만화 카페에서 빈백과 한 몸이 되어 뒹굴다가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다시 만화 카페로 돌아간다. 예전엔 만화방 갔다가 걸리면 엄마한테 등짝 맞기가 일쑤였는데, 요즘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와서 취향대로 만화를 골라 보더라. 물론 사라진 것들도 있다. 배달 짜장면, 24시간 영업, 대여 서비스 같은 것들. 그 옛날 만화방에선 요금을 시간당 낼 것인지 권당 낼 것인지 고를 수도 있었는데. 대신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과 다양한 간식을 얻었으니, 뭐. 비가 오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 여행자에게 한국의 만화 카페란 매우 괜찮은 선택이다.

English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a-bang-up-place-to-lounge-en
Japanese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a-bang-up-place-to-lounge-ja
01.0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