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폭등의 시대, 공기처럼 값싸게!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사놓고 쓰지 않는 물건이 너무 많다. 물론 이유도 있고 사연도 있다. 손 마사지기와 미니 마사지기와 두피 마사지기. 꺼내기 귀찮다. 전자레인지용 구이 팬. 맛없다. 진동 세안 브러시. 브러시를 빨아서 말려야 한다는 걸 생각 못 했지. 도자기 찜기. 쓰기 전에 묽은 쌀죽을 한 번 끓여야 한다는데 6년째 못 끓이고 있다. 하지만 드디어 현명한 소비를 했다. 10년 넘게 고민한 끝에 사버린 에어프라이어. 한 달간 열 번은 썼나 보다.

기름 대신 뜨거운 공기로 음식을 튀기는 에어프라이어는 몇 년간 천대와 멸시에 시달리던 물건이었다. 그걸 쓰면 튀김 맛은 역시 기름 맛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는 거였다. 귀찮으면 그냥 오븐을 쓰라고. 그게 함정이었다. 집에 오븐이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까마득한 옛날 우리 집에도 오븐이 있었다는데, 엄마가 쿠키도 구워줬다는데, 아무 기억이 없다. 그 오븐은 세련된 주부를 꿈꾸었던 우리 엄마 한때의 허세. 대부분 한국인은 냄비와 프라이팬만 있으면 굽고 끓이고 볶고 튀기는 모든 요리를 할 수 있다. 좁은 주방에 오븐을 들일 여유가 없기도 하고.

그런데 에어프라이어는 작다. 청소가 쉽다. 가격이 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창고형 마트의 에어프라이어를 사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제품이 입고되는 시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2020년 말 한국의 에어프라이어 보급률은 65%에 달했는데,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22% 증가한 수치다. 1인 가구가 늘어난 데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을 꺼리게 된 거다. 에어프라이어 조리법만 적힌 냉동식품이 많아졌고, 온갖 레시피가 공유됐다. 나도 먹고 싶었는데, 통째로 구운 스팸 같은 거. 에어프라이어 크기와 모양에 맞춘 종이 호일 접시까지 나왔다. 그래도 좁은 주방을 바라보며 버텼는데 작년부터 물가 폭등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손수 닭을 튀길 수밖에.

2023년 이탈리아의 스프레드 오일 브랜드 만토바는 한국 시장을 위해 에어프라이어용 오일을 출시했다. 그걸 칙칙 뿌려서 온갖 고기와 야채를 굽고 있다. 그동안 사지 못했던 냉동 피자와 치킨 너겟 따위도 저장했다. 그렇게 밥을 먹을 때마다 사 먹는 가격과 비교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폭등하는 물가에 굴복해 또 하나의 가전을 들인 우리 집. 차라리 허세로 쿠키를 굽던 오븐 시절이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씁쓸한 이 마음, 목살을 구워 달래볼까.
04.1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