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 신고 슬릭백을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집 근처에 애매한 쇼핑몰이 생겼다. 애매한 규모의 매장에서 애매한 컨셉으로 물건을 파니 손님들도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영업 초기부터 한적했던 쇼핑몰을 둘러보는데, 오직 한 매장에만 사람이 붐볐다. 꼬마들이 환장한다는 신발, 알록달록 귀여운 크록스 팝업 스토어였다.

크록스를 처음 본 건 캐나다에서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상한 신발을 신는구나, 물 새는 바가지처럼 생겼는데. 하지만 크록스는 이내 한국에서도 유행을 탔고, 장마철에 좋아 보이길래 나도 하나 샀다. 비웃을 때는 언제고 유행에 편승하는 나 자신을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그리고 알게 됐다. 크록스는 원래 서핑하면서 신으라고 일부러 구멍을 냈다는 사실을. 일종의 수륙양용이랄까.

그런데 크록스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꼬마들과 10대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병원에서 크록스가 인기 있는 건, 어느 치과 블로그에서 말하기를, 편하고 위생적이며 안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째서 크록스를 좋아하는 걸까. 귀여워서? 지비츠를 달아 개성 있게 꾸미는 재미로?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아이들이 고무로 된 슬리퍼나 샌들, 그러니까 상표만 밝히지 않았을 뿐이지 크록스를 신으면 위험하다고 적혀있던데?

어쨌든 요즘 아이들은 크록스를 좋아해서 겨울에도 크록스만 고집한다는 엄마들의 한탄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한겨울에도 크록스 신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 때문에 학대하는 부모로 보일까 걱정된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왔지, 털 달린 크록스. 하지만 크록스가 편하긴 한가 보다. 2억 뷰를 넘긴 슬릭백 영상에서 어느 중학생이 신고 있는 신발이 크록스였으니까. 오오, 저 소년, 크록스를 신고선 공중 부양을 하고 있잖아! 훗날 크록스는 그 소년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 모두에게 자사 신발을 선물했다는 훈훈한 미담이 전해진다.
@wm87.4 한국원탑#slipback ♬ original sound - HYMU
소년의 영상을 보며 중년의 나도 오래된 크록스를 꺼내봤다. 옆으로 미끄러지기를 기원하며 발을 디뎌봤다. 될 리가 있나, 중요한 건 신발이 아니라 사람일 텐데. 이젠 유행을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구나. 요즘 아이들은 어째서 같은 브랜드의 패딩을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들까 궁금해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우리 때도 폴로 모자를 쓰고 이스트팩 가방을 메곤 했지. 하나같이 폴로 셔츠 깃을 세우고 다녔지. 누군가 시작하면 따라 하지 않곤 못 배기던 시절. 그러니 한 놈만 잡으면 되는 걸까? 한 놈만 잡으면 전부를 손에 넣을지도.

English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slickbacking-in-crocs-en
01.3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