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이다, 지갑을 열어라!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장을 보러 갔더니 삼겹살 세일을 하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삼겹살이 모래성 무너지듯 사라지기에 나도 본능적으로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 한 팩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름에 잠겼다. 내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삼겹살을 구운 게 어언 27년 전이던가. 기름이 무진장 튀어서 다신 하지 않았지. 내가 이걸 왜 샀을까,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자.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깨달았다. 오늘은 3월 3일, 삼겹살 세일을 했던 까닭이 있었구나. 한국의 3월 3일은 삼겹살데이니까.

삼겹살데이는 2003년 돼지 구제역으로 피해를 당한 농가를 돕기 위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평소에도 많이 먹는 삼겹살을 오늘도 먹어보자, 정도의 핑계가 되긴 했지만. 참고로, 예로부터 음력 3월 3일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이다. 한국에는 삼겹살데이 말고도 숱한 ‘데이’가 존재한다. 11월 11일은 연인이나 가족에게 1자 모양 과자 빼빼로를 선물하는 빼빼로데이다. 제조사에 의하면 1990년대에 영남 지역 여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풍습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빼빼로 1년 매출의 50% 이상이 빼빼로데이에 나온다고 한다. 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지만, 괜찮다. 난 원래 빼빼로를 안 먹는다고. 흥, 빼빼로 따위! 선물은 내용보다 포장과 기분이라지만, 그깟 빼빼로 따위!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한국의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었고, 지금은 연인들이 서로 뭔가 비싼 걸 선물하는 날로 진화했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호텔 스위트룸과 샴페인 패키지가 출시된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요즘 애들은 밸런타인데이를 이렇게 보내는구나. 흥, 그깟 스위트룸 따위! 하지만 아시아 지역 외의 사람들에게 화이트데이는 낯설 거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다. 사탕보다 초콜릿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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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인이 아니면 거의 모를 법한 14일들이 있다. 4월 14일은 화이트데이에 외로웠던 어둠의 솔로들이 모여 짜장면을 먹는 블랙데이. 5월 14일은 연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로즈데이. 6월 14일은 그 연인과 (아닐 수도 있겠지만) 키스하는 키스데이. 이렇게 12월 14일까지 아주 꽉 차 있다! 그중에서 내가 챙겨본 건 블랙데이가 유일하지. 올해는 10월 14일 와인데이도 챙겨볼까. 어차피 마실 술이지만, 그날만은 맥주나 소주 대신 와인으로?

English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happy-unofficial-holiday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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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