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폭등의 시대, 공기처럼 값싸게!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사놓고 쓰지 않는 물건이 너무 많다. 물론 이유도 있고 사연도 있다. 손 마사지기와 미니 마사지기와 두피 마사지기. 꺼내기 귀찮다. 전자레인지용 구이 팬. 맛없다. 진동 세안 브러시. 브러시를 빨아서 말려야 한다는 걸 생각 못 했지. 도자기 찜기. 쓰기 전에 묽은 쌀죽을 한 번 끓여야 한다는데 6년째 못 끓이고 있다. 하지만 드디어 현명한 소비를 했다. 10년 넘게 고민한 끝에 사버린 에어프라이어. 한 달간 열 번은 썼나 보다. 기름 대신 뜨거운 공기로 음식을 튀기는 에어프라이어는 몇 년간 천대와 멸시에 시달리던 물건이었다. 그걸 쓰면 튀김 맛은 역시 기름 맛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는 거였다. 귀찮으면 그냥 오븐을 쓰라고. 그게 함정이었다. 집에 오븐이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까마득한 옛날 우리 집에도 오븐이 있었다는데, 엄마가 쿠키도 구워줬다는데, 아무 기억이 없다. 그 오븐은 세련된 주부를 꿈꾸었던 우리 엄마 한때의 허세. 대부분 한국인은 냄비와 프라이팬만 있으면 굽고 끓이고 볶고 튀기는 모든 요리를 할 수 있다. 좁은 주방에 오븐을 들일 여유가 없기도 하고. 그런데 에어프라이어는 작다. 청소가 쉽다. 가격이 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창고형 마트의 에어프라이어를 사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제품이 입고되는 시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2020년 말 한국의 에어프라이 …
04.10.2024

학교 옆에 등산로, 등산로 옆에 맛집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관광객이라곤 없는 스페인 소도시 변두리였다. 보기 드문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나를 흘끔거리던 할머니가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한국이요.” 할머니가 반색했다. “아, 거기는 산이 그렇게 많다며?” 흠칫. 어떻게 그게 여기까지 소문이 났지? “맞아요.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이에요.” 부끄러워라. 30년이 넘도록 잊히지도 않는 교과서의 한 대목을 읊조리다니. 할머니는 만족했다. “우리는 들판이 이렇게 넓은데!” 아, 네, 좋으시겠어요. 저는 평지에 있는 학교 한번 다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산이 많아서 그런지 한국인은 등산을 좋아한다. 2022년 산림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남녀의 78%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숲길 체험을 한다고 한다. 원래 중년과 노년 등산객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코로나로 야외 활동이 위축되면서 나 홀로 혹은 친구들과 단출하게 등산을 즐기는 20대와 30대도 대거 유입됐다. 그에 따라 등산복도 변화했다. 알록달록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등산복에서 레깅스와 맨투맨, 아노락 등으로 구성된 온건한 차림새로. 하지만 젊은이들의 레깅스가 낯부끄럽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어 세대 갈등이 촉발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https://www.flickr.com/photos/mcstkorea/18586056152/in/photostream/ 어쨌든 높은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체력도 단련하니, 등산이란 이 아니 좋을쏘냐. …
03.27.2024

14일이다, 지갑을 열어라!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장을 보러 갔더니 삼겹살 세일을 하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삼겹살이 모래성 무너지듯 사라지기에 나도 본능적으로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 한 팩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름에 잠겼다. 내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삼겹살을 구운 게 어언 27년 전이던가. 기름이 무진장 튀어서 다신 하지 않았지. 내가 이걸 왜 샀을까,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자.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깨달았다. 오늘은 3월 3일, 삼겹살 세일을 했던 까닭이 있었구나. 한국의 3월 3일은 삼겹살데이니까. 삼겹살데이는 2003년 돼지 구제역으로 피해를 당한 농가를 돕기 위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평소에도 많이 먹는 삼겹살을 오늘도 먹어보자, 정도의 핑계가 되긴 했지만. 참고로, 예로부터 음력 3월 3일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이다. 한국에는 삼겹살데이 말고도 숱한 ‘데이’가 존재한다. 11월 11일은 연인이나 가족에게 1자 모양 과자 빼빼로를 선물하는 빼빼로데이다. 제조사에 의하면 1990년대에 영남 지역 여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풍습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빼빼로 1년 매출의 50% 이상이 빼빼로데이에 나온다고 한다. 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지만, 괜찮다. 난 원래 빼빼로를 안 먹는다고. 흥, 빼빼로 따위! 선물은 내용보다 포장과 기분이라지만, 그깟 빼빼로 따위!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
03.20.2024

내 나이 일흔, ‘스밍’을 하노라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집 근처 공연장 앞을 지나던 길이었다. 사진이 들어간 티셔츠와 부채, 머리띠 같은 굿즈를 파는 부스 앞을 지나는데… 뭔가 이상한데…. 아, 굿즈를 사러 모여든 손님 대부분이 예순은 너끈히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었다. 열기가 끓어오른다기보다는 신바람이 넘쳐서 어깨춤이 절로 나올 듯한 분위기랄까. 그곳은 <미스터 트롯> TOP7 콘서트장이었다. 트로트는 ‘성인가요’나 ‘뽕짝’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대중음악 장르다. ‘성인가요’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어르신들이 즐기는 장르지만, 어린아이들도 트로트 한두 곡쯤은 구성지게 불러 젖히곤 한다. 명절이나 환갑잔치에서 트로트를 부르면 용돈 액수가 달라지니까. 트로트에는 크게 구슬픈 계열과 흥겨운 계열이 있는데, 흥겨운 계열의 경우, 젊은이들도 흥을 돋우며 대동단결하는 용도로 자주 부른다. 같은 노래를 다 함께 목청껏 부르노라면 오늘 만난 신입생이 죽마고우가 되고 쓰디쓴 소주가 사이다보다 달콤해지는 거지. 어쨌든 대체로 공원에서 술판을 벌이는 불량한 어르신들 곁을 지날 때나 듣던 트로트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난생처음 듣는 가수의 목소리였다. 이건 뭐지, 송가인이 대체 누구지. 그렇다, 송가인. 시즌 1의 우승자, 대한민국 트로트의 판도를 바꾼 거물,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고향 진도에 송가인 공원까지 생긴 전설. 그리고 시즌 1에서 임영웅이 우승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칙칙했던 노년의 …
03.13.2024

민들레를 사냥하는 계절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인간과 잡초의 역사를 다룬 책 <미움받는 식물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미국인들은 잔디밭 풍경을 망친다는 이유만으로 민들레를 몰아내고자 강력한 제초제를 개발했다고. 왜 그랬을까, 민들레가 보기 싫으면 먹어서 없애면 될 텐데. 한국에선 연한 민들레 잎을 따서 된장에 무치고 김치와 장아찌도 담그는데. 하얀 민들레는 몸에 좋아서 약으로 쓰고 차로 끓인다던데. 민들레처럼 누군가의 눈에는 잡초로 보이는 작고 보잘것없는 식물들. 그걸 한국인들은 ‘나물’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나물은 계절이 바뀌는 신호다. 시장에 냉이가 나오면 겨울이 가나 보다 하고, 두릅이 나오면 이제 진짜 봄이로구나 한다. 날이 더워지면 호박잎을 쪄서 쌈을 싸기 시작한다. 나물은 제철이 짧기 때문에 가끔은 등을 떠밀리는 기분도 느낀다. 향긋한 유채나물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은 2월에서 4월까지. 한 번이라도 더 먹으려면 서둘러야만 한다. 그렇다면 겨울엔 뭘 먹어야 할까. 제철 나물을 데치거나 삶아 말린 ‘묵나물’이 있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향이 진하고 씹는 맛이 좋아진다. 나물은 먹는 법도 다양하다. 보통은 살짝 데쳐서 된장이나 참기름에 무친다. 이건 반찬으로도 좋지만 몇 가지를 밥에 얹어 고추장에 비비면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비빔밥이 된다. 된장국 재료로도 훌륭하다. 냉이나 달래, 쑥을 넣은 된장국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음식으로 태어난다. 곰취나 호박잎은 그냥 데치기만 해서 쌈장을 …
03.06.2024

한국의 카페에서 길을 잃다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탄다. 4층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면 루프탑. 어디에 앉을까 드넓은 실내를 둘러보며 한 층 한 층 걸어 내려오는데 벌써 벨이 울린다. 이런. 서둘러 2층에 자리를 잡으려니 중년 남성인 일행이 거부한다. 대형 곰돌이 인형 포토존까지 있는 귀여운 공간은 싫다는 거다. 루프탑은 햇살이 강렬하고 4층은 좌식이어서 아이들이 많고. 그렇다면 논밭 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무난한 3층으로 가자. 먼저 앉아있을 테니 못 찾겠으면 전화해. 오다가 길 잃어버리지 말고. 여기가 어디일까. 흔하디흔한 한국의 ‘대형 카페’다. 2018년 파주에 공장을 개조한 카페가 문을 열면서 대형 카페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 근교인 김포와 파주 등이 먼저였고 차츰 지방에서도 경치 좋은 외곽을 중심으로 대형 카페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컨셉은 다양했다. 식물 카페(식물이 많다), 유럽풍 카페(유럽풍이다), 노을 맛집 카페(노을이 좋다), 호수 뷰 카페(호수가 보인다), 핑크뮬리 카페(정원에 핑크뮬리가 있다), 계곡 카페(계곡 앞에 있다)…. 대부분 천정이 높고 주차가 편하고… 비싸다. 음료도 비싸고 빵과 케이크도 비싸다. 그리고 리뷰에 이런 문장이 흔히 등장한다. “커피 맛은 보통이지만 맛이 중요한가요?”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거지. 앞에서 나열한 대형 카페의 특징을 다시 보자. 뷰와 인테리어와 정원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대형 카페는 마 …
02.28.2024

“Thai” Means Freedom: We Nickname Our Children as We Please

Chiratikan Sanguancheep

Project Coordinator & TH Copy Editor

Embarking on a journey into the global workplace, I found myself faced with that familiar moment: the introduction. Working remotely, I braced myself behind my computer screen to type out those words in our common chat room, “Hello everyone, my name is Title”. It is a simple statement, yet it lies in …
02.22.2024

Mu Kratha Heals Everything

Chiratikan Sanguancheep

Project Coordinator & TH Copy Editor

My family has a long-standing tradition that’s been going strong for two decades: a Sunday family gathering. Even in food-loving Thailand, our commitment to hosting a weekly feast for 20 long years is something of a wonder. Last Sunday’s headcount was a whopping 15, a sizable gathering that rivals a N …
02.14.2024

Sticker Shock: This (Black) Car is Blue

Chiratikan Sanguancheep

Project Coordinator & TH Copy Editor

When I was asked to further explore aspects of Thai culture related to color, I couldn’t help but chuckle. Perhaps, I was now considered an expert, having written a couple of articles on the subject (you can find those articles here and here ). Things that are a part of my daily life are apparently s …
02.07.2024

크록스 신고 슬릭백을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집 근처에 애매한 쇼핑몰이 생겼다. 애매한 규모의 매장에서 애매한 컨셉으로 물건을 파니 손님들도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영업 초기부터 한적했던 쇼핑몰을 둘러보는데, 오직 한 매장에만 사람이 붐볐다. 꼬마들이 환장한다는 신발, 알록달록 귀여운 크록스 팝업 스토어였다. 크록스를 처음 본 건 캐나다에서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상한 신발을 신는구나, 물 새는 바가지처럼 생겼는데. 하지만 크록스는 이내 한국에서도 유행을 탔고, 장마철에 좋아 보이길래 나도 하나 샀다. 비웃을 때는 언제고 유행에 편승하는 나 자신을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그리고 알게 됐다. 크록스는 원래 서핑하면서 신으라고 일부러 구멍을 냈다는 사실을. 일종의 수륙양용이랄까. 그런데 크록스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꼬마들과 10대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병원에서 크록스가 인기 있는 건, 어느 치과 블로그에서 말하기를, 편하고 위생적이며 안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째서 크록스를 좋아하는 걸까. 귀여워서? 지비츠를 달아 개성 있게 꾸미는 재미로?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아이들이 고무로 된 슬리퍼나 샌들, 그러니까 상표만 밝히지 않았을 뿐이지 크록스를 신으면 위험하다고 적혀있던데? 어쨌든 요즘 아이들은 크록스를 좋아해서 겨울에도 크록스만 고집한다는 엄마들의 한탄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한겨울에도 크록스 신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 때문에 학대하는 부모로 보일까 걱정된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 …
01.3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