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이네는 연탄이 천 장!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모처럼 눈이 많이 왔다. 그렇다면 구경을 나가야지.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숲에 갔더니 경사만 보였다 하면 눈썰매를 타는 꼬맹이들. 경사가 진 길은 모두 눈이 다져져 미끄러워 보였다. 골다공증 기미가 있는 중년에겐 몹시 위험하다는 뜻이다. 사뿐히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하며 떠올렸다. 그 옛날 꼬마들은 동네 언덕배기에서 비닐 포대를 썰매 삼아 놀고, 어른들은 그 뒤에서 득달같이 연탄재를 뿌리곤 했는데. 미끄러지지 말라고. 이제 연탄은 없다, 거의. 그러니 연탄재도 없다. 아쉬워라.

연탄은 동아시아에서 주로 쓰였던 연료다. 무연탄을 굳힌 다음 연소가 잘되도록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난방이나 조리에 사용하곤 했다. 아궁이에 불씨가 남은 연탄과 새 연탄을 포개 넣으면 저녁부터 새벽까지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서 기나긴 겨울밤이 두렵지 않았다. 전기밥솥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아빠의 퇴근이 늦는 날이면 가장 따뜻한 아랫목 이불 아래 밥공기를 묻어두기도 했다. 그러니 월동 준비를 하려면 무엇보다 연탄을 쟁여야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복권 당첨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정봉이네 집에 연탄 천 장이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세상에, 천 장이라니. 지나가던 선우 엄마가 부러워할 만도. 1988년 한국에선 78%에 달하는 가정이 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곤란한 순간도 많았다. 불씨가 남은 연탄을 깨뜨리거나 연탄 두 장이 모두 타버리면 불씨를 되살릴 방법이 없었다. 정봉이 아빠도 고뇌했지, 아궁이에서 붙어 나온 연탄을 어떻게 하면 깨뜨리지 않고 분리할 것인가. 그럴 때면 불쏘시개로 좋은 번개탄을 사다가 새로 불을 붙이거나 불씨가 남은 옆집 연탄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곤란한 건 갈라진 바닥이나 벽 틈으로 불완전 연소된 연탄가스가 들어오는 경우였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도 연탄가스를 마셨는데, 그때 등장하는 해독제가 동치미 국물. 무에는 혈액 내의 독성 물질을 해독하는 성분이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걸 알고 마신 걸까. 연탄가스로 인한 사망 사고가 잦았던 시절이었다.

2021년 9월 기준, 한국에서 연탄으로 난방하는 가정은 81,721가구에 불과했다. 정치가들이 홍보 삼아 카메라 앞에서 연탄 나르기 봉사 활동을 하던 옛날이 까마득하다. 지금 내가 연탄을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식당이다. 어릴 적엔 그렇게 싫어했던 가스 냄새를 맡으면서 연탄 화덕에 고기를 굽는다. 고기에서 연기의 맛이, 추억의 맛이 난다.

English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lights-burn-out-on-burning-coal-en
01.1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