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옆에 등산로, 등산로 옆에 맛집

Jardín Kim

Lead Korean Writer

관광객이라곤 없는 스페인 소도시 변두리였다. 보기 드문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나를 흘끔거리던 할머니가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한국이요.” 할머니가 반색했다. “아, 거기는 산이 그렇게 많다며?” 흠칫. 어떻게 그게 여기까지 소문이 났지? “맞아요.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이에요.” 부끄러워라. 30년이 넘도록 잊히지도 않는 교과서의 한 대목을 읊조리다니. 할머니는 만족했다. “우리는 들판이 이렇게 넓은데!” 아, 네, 좋으시겠어요. 저는 평지에 있는 학교 한번 다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산이 많아서 그런지 한국인은 등산을 좋아한다. 2022년 산림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남녀의 78%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숲길 체험을 한다고 한다. 원래 중년과 노년 등산객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코로나로 야외 활동이 위축되면서 나 홀로 혹은 친구들과 단출하게 등산을 즐기는 20대와 30대도 대거 유입됐다. 그에 따라 등산복도 변화했다. 알록달록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등산복에서 레깅스와 맨투맨, 아노락 등으로 구성된 온건한 차림새로. 하지만 젊은이들의 레깅스가 낯부끄럽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어 세대 갈등이 촉발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https://www.flickr.com/photos/mcstkorea/18586056152/in/photostream/
어쨌든 높은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체력도 단련하니, 등산이란 이 아니 좋을쏘냐. 게다가 한국은 도심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손쉽게 산에 갈 수 있다. 심지어 내가 다닌 대학은 교문 옆에 등산로 입구가 있었다. 국토의 70%가 산이니까!

하지만 등산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중년들은 굳이 부하 직원이나 후배를 끌고 다니려는 경향이 있는 탓이다. 몇 번 되지 않는 나의 등산 경험도 그랬다. 선배에게 끌려가고 상사에게 끌려가고 사장에게 끌려갔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도중에 등산을 포기하고 혼자 앉아 일행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할아버지들이 쥐포와 맥주를 나눠준 적도 있다. 등산객들의 인심이란 후하기도 하지. 산에 가면 모르는 사람도 동료가 된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혼자 내려가지 않고 일행을 기다렸을까. 등산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거치는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산 아래 식당에서 먹고 마시는 백숙과 파전과 막걸리. 이것이야말로 등산의 꽃. 물론 의문은 남는다.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등산로 맛집은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등산을 해야 하는 건지. 낙오된 나를 수습한 선배가 답했다. 여기선 내가 사주잖아. 아, 등산객들의 인심이란 후하기도 하여라.

English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take-a-hike-en
03.2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