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를 사냥하는 계절
인간과 잡초의 역사를 다룬 책 <미움받는 식물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미국인들은 잔디밭 풍경을 망친다는 이유만으로 민들레를 몰아내고자 강력한 제초제를 개발했다고. 왜 그랬을까, 민들레가 보기 싫으면 먹어서 없애면 될 텐데. 한국에선 연한 민들레 잎을 따서 된장에 무치고 김치와 장아찌도 담그는데. 하얀 민들레는 몸에 좋아서 약으로 쓰고 차로 끓인다던데. 민들레처럼 누군가의 눈에는 잡초로 보이는 작고 보잘것없는 식물들. 그걸 한국인들은 ‘나물’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나물은 계절이 바뀌는 신호다. 시장에 냉이가 나오면 겨울이 가나 보다 하고, 두릅이 나오면 이제 진짜 봄이로구나 한다. 날이 더워지면 호박잎을 쪄서 쌈을 싸기 시작한다. 나물은 제철이 짧기 때문에 가끔은 등을 떠밀리는 기분도 느낀다. 향긋한 유채나물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은 2월에서 4월까지. 한 번이라도 더 먹으려면 서둘러야만 한다. 그렇다면 겨울엔 뭘 먹어야 할까. 제철 나물을 데치거나 삶아 말린 ‘묵나물’이 있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향이 진하고 씹는 맛이 좋아진다.나물은 먹는 법도 다양하다. 보통은 살짝 데쳐서 된장이나 참기름에 무친다. 이건 반찬으로도 좋지만 몇 가지를 밥에 얹어 고추장에 비비면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비빔밥이 된다. 된장국 재료로도 훌륭하다. 냉이나 달래, 쑥을 넣은 된장국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음식으로 태어난다. 곰취나 호박잎은 그냥 데치기만 해서 쌈장을 곁들여 밥을 싸 먹고, 쑥은 쌀가루를 묻혀 찌거나 쌀가루 반죽에 넣어 떡을 한다. 두릅은 데치고 튀기고 전을 부친다. 언 땅이 녹을 무렵부터 잎이 억세지기 직전까지, 온갖 나물이 온갖 음식으로 밥상을 채운다.
지금은 산이나 밭에서 재배하는 나물이 많다. 하지만 내게 나물이란 자그마한 부엌칼과 채반을 챙겨 들고 산이나 들로 나가 직접 캐던, 일종의 ‘사냥감’이다. 서울에서 충청도 시골로 이사했던 40년 전, 처음 맞이한 봄에 동네 아주머니들을 따라 나물 사냥에 나섰다. 냉이는 뿌리까지 캐고 쑥은 잎을 뜯고, 그러다 목이 마르면 찬합에 싸 온 과일을 먹었다. 당시엔 귀했던 통조림 파인애플을 먹은 경이로운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민들레도 그때 처음 먹었다. 쓰디쓴 맛에 곧바로 뱉어버리고 말았지만. 지금은 귀한 맛이다, 민들레의 철은 찰나이므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채반 대신 장바구니를 챙겨, 산이나 들 대신 시장으로, 나물 사냥에 나서야겠다.
English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the-dandelion-hunter-en
Japanese Translation: cultureflipper.com/blog/the-dandelion-hunter-ja
03.06.2024